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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詩시 맛있게 읽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25 조회수 205

군대에서 詩시 맛있게 읽기

병영독서활성화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독서코칭 프로그램은 총7회로 계획되어 있는데, 올해부터 시 분야가 단독으로 편성되어 눈길을 끈다. 팍팍한 병영생활에서 시의 효용이 더욱 기대되기 때문. 등단 20여년 경력의 중견시인이자 독서코칭 강사로 활동하는 박남희 시인이 군대에서 시와 친해지는 법을 어드바이스했다.


글 박남희(시인, 문학평론가)

 

 

 


위안과 용기를 주기에 시는 힘이다!
밥을 맛있게 먹듯이 군에 있을 때 시를 맛있게 읽을 수는 없을까? 조금은 뜬금없게 느껴지는 이러한 질문은 필자가 작년에 군에서 독서코칭 강의를 하면서 갖게 된 생각 중 하나이다.
조금은 지루하고 딱딱할 수도 있는 병영생활에서 시를 읽고 시의 매력을 발견하는 일은, 우연히 숲길을 헤매다 맑은 호수를 발견하는 일만큼이나 신선한 것이다. 하지만 시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장병들의 머릿속엔 ‘시는 어려운 것’이라는 선입견이 자리잡고 있어서 병영도서관에서 시집을 선뜻 빼어들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경위로든 시와 만나게 되면서 ‘나에게 시는 무엇인가?’하는 질문과 한번쯤 마주하게 된다. 시와 친하지 않은 이들에겐 ‘시’ 하면 떠오르는 것은 국어교과서이다. 시험 준비를 위해서 교과서의 시를 분석하면서 은유법이 어떻고 역설이나 반어법은 어떤 효과를 위해서 쓰인 것인지를 따지다 보면, 한 덩어리의 아름다운 시는 어느새 산산이 부서져서 우리들의 머릿속에 정육점의 고깃덩이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시를 접하게 되면서 만나는 ‘시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인생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 못지않게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멕시코의 유명한 시인이자 비평가인 옥타비오 파스는 "시는 앎이고 구원이고 힘이고 포기이다… 시는 선택 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이다… 시는 여행에의 초대이자 귀향이다"라는 포괄적인 시론을 통해서 시를 나름대로 정의한 바 있다.
이번에 필자가 시에 대한 에세이를 게재하게 된 잡지가 병영매거진 HIM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옥타비오 파스가 말한 ‘시는 힘’이라는 구절에 새삼 눈길이 간다.
한 줄의 시가 인생에 실패하거나 낙심한 자들에게 힘이 될 때가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며 피었나니/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 어디 있으랴”로 시작되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위안과 용기를 준다.

 

 

 

 

 

질풍노도의 시기, 우리는 누구나 시인
필자는 아직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 훈련병 시절, 전방 훈련소 식당에 시화로 붙어있던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읽으면서, 군인으로 나라에 부름 받은 나 자신의 삶과 실존을 새롭게 반추해 본 적이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일제 강점기 윤동주 시인의 삶은 막연히 시인의 꿈을 키워나가던 훈련병으로서의 나 자신에게 커다란 울림이 되었었다. 특히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서시의 마지막 구절은 필자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여운으로 남아서 병영생활 내내 그 의미를 되새기곤 했다.
필자는 작년에 전방 포병연대에서 독서코칭 강의를 하면서 장병들과 시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어떤 말년 병장이 자신이 쓴 시를 봐달라고 몇 편의 시를 가져와서 그 중 잘 쓴 시를 장병들과 감상한 적이 있다. ‘겨울 숲’이라는 제목의 시였는데, 찬 바람에 잎을 떨구고 혼자 쓸쓸히 겨울을 견디고 있는 겨울나무가 꿈꾸는 힘겨운 희망이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의 아련한 꿈과 겹쳐져서 후임 장병들의 가슴에도 잔잔한 파문을 던졌던 기억이 새롭다.
모든 장병들이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시집이나 잡지를 읽다가 마음을 움직이는 한편의 시를 만나게 되면, 한편의 시가 지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스스로 시인이 되고 싶은 열망을 품게 되기도 한다. 반면에 우연히 어려운 시를 읽게 되면 시는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라는 일반론에 자신의 용기를 저당 잡히고, 모처럼 접했던 시의 매력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게 되기도 한다.
이미 한 차례씩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건너온 장병들 각자의 마음을 들추어보면 저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써 놓은 자신만의 시가 한 구절씩은 있게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편의 시를 맛있게 읽고 시심을 느낀 이들은 누구나 시인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위를 들러보면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시이다. 한 그루의 나무나 풀꽃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시인이다.
딱딱한 병영생활에서 애인을 만나듯 한편의 시를 만나서 그 시 속에 메말랐던 자신의 마음을 풀어놓는다면, 지루했던 병영생활이 살구꽃 피는 봄처럼 싱싱하게 피어날 것이다.



천지가 온통 아득한 일


군에 간 28살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천지가 온통 아득한 일

 

훈련소에서 스스로 GOP근무를 자청했는데

대대본부 인사과 말년 병장 후임으로

그것도 선임이 없는 원톱이 되어

철책선 근무는 물론 생활관 불침번도 서지 않고

남들이 다 받는 훈련도 받지 않게 되었다는

뜻밖의 아들 전화를 받은 날은

천지가 온통 아득한 날

 

40년 전에 내가

화천 전방 GOP에서 근무하던 일이 생각나

철책을 뚫고 넘어온 간첩 세 명을 수색하다 놓치고

사단 수색대원이 되어 비무장지대 지뢰밭을 누비던

그 아득한 일들이 떠올라

백도 없고 비선도 없는 내 아들이

추운 겨울에 따뜻한 행정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니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반가운 마음에

 

누구한테 살가운 편지 한 통 써 보지 않은 내가

딸내미가 준 푸른 색 편지지를 받아 들고

군에 간 지 두 달 밖에 안 된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분명

 

천지가 온통 아득한 일

 

 

*박남희 시인이 재작년 겨울 20대 후반의 나이로 지각 입대한 아들을 생각하며 썼던 시. ‘천지가 온통 아득한 일’이란 문구는, 1998년 경북 안동 택지 개발 현장, 분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잘 보존된 유골과 함께 ‘원이 아버님께’로 시작되는 한글 편지가 한 장 발견되는데, 그 편지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의역한 것이다.  

 병영매거진 HIM 8월호(v.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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